‘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 5:21)
‘우상’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이돌론(εἴδωλον)은 ‘보이는 것, 외모, 인물 형태, 형상, 외견’의 의미를 가진 에이도스(ειδως)의 파생어로 ‘경배를 위한 형상, 이방신상, 숭배, 우상’이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그리고 에이도스(ειδως)는 ‘보다, 쳐다보다, 느끼다’라는 뜻을 가진 에이도(ειδω)의 파생어이다.
에이도(ειδω)는 크게 눈을 뜨고 자세하게 본다는 의미로써 ‘경험으로 알다, 마음의 눈으로 보다’의 뜻을 가진 블레포(βλέπω)와 완전히 다른 내용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표피적으로 보고 알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에이도(ειδω)는 항상 과거시제에만 사용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문자적 혹은 상징적으로 ‘보다’는 의미에서 단지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보다’, 우연히 ‘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눈에 보여지는 그대로 보고 알아버렸다는 의미이다.
정리하면, 에이돌론(εἴδωλον)은 어떤 형상을 표피적으로 보아 ‘느끼는 그대로 생각하고 알아버리게 된 것’이며 성경은 그것을 우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영어단어 ‘우상’이라는 뜻의 ‘idol’이 파생되어 만들어 졌다.
보이는 그대로의 선악과를 먹고 선악의 주체가 되어 하나님처럼 된 인간, 그가 바로 우상이며, 우상이 되버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우상’(εἴδωλον)을 만드는 일 뿐이다(행7:41).
성경은 그 우상을 가리켜 더러운 것(행15:2), 가증한 것(롬2:22), 아무것도 아닌 것(고전8:4), 말이 없어 말 못하는 것(고전12:2) 그리고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것(계9:21)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빛을 알아보지 못하는 소경, 거짓 증거만을 하는 자, 하나님의 생명이 없어 존재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 생명의 말씀이 없어 그 말을 못하는 벙어리, 그 진리를 듣지 못하는 귀먹어리, 생명이 없어 움직이지 못하는 앉은뱅이… 이것이 죽음 가운데 있는 우상으로서의 인간의 실존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상(εἴδωλον)이 되버린 ‘나’ 자신에게서 탈출한(휠랏소 : φυλάσσω)한 자이며,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 있는 ‘나’를 지켜며(휠랏소 : φυλάσσω) 사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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